4·3이라는 명칭은 1948년 4월 3일에 발생했던 대규모 소요사태에서 유래하였다. 그날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방해하기 위해 무장대를 조직, 경찰서 기습을 감행하는 등 반란을 일으켰고, 제주 4·3 사건이라고 불린다. 목호의 난과 함께 제주도 역대 최대의 참사 중 하나이며, 여순사건, 국민방위군 사건, 보도연맹 학살사건, 경산 코발트광산 학살사건, 거창 양민 학살사건 등과 더불어 대한민국 제1공화국 시기에 민간인이 억울하게 학살되거나 희생된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힌다. [4] 본질적으로는 반란을 일으킨 남로당계 공산주의자들과 반란 진압을 명목 삼아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한 서북청년단 등 극우 폭력단체가 문제의 원인이라 볼 수 있으며, 정치 극단주의에 휩싸여 공권력의 대민 범죄를 방..